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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증외상 사망률은 예방 가능한 비율만 따져도 선진국 대비 두 배 이상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보다가 이 숫자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백강혁 같은 의사가 현실에도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날 수 있었던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고요.
드라마가 불편하게 느껴진 이유 — 현실과 너무 닮아서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 중 백강혁 교수는 외상외과(Trauma Surgery) 전문의입니다. 여기서 외상외과란, 교통사고·추락·자상처럼 갑작스러운 신체 손상을 응급으로 다루는 외과 분야를 말합니다. 단순히 메스를 드는 외과가 아니라, 생사의 경계에 선 환자를 몇 분 안에 판단하고 집도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장면들은 사실 수술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병원 경영진이 중증외상센터의 '수익성'을 따지는 장면, 교수들이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드라마니까 과장됐겠지 싶었는데, 제 경험을 떠올리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저희 아버지가 예전에 허리가 좀 불편하다는 이유로 종합병원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검사 결과 허리디스크(요추 추간판 탈출증)였는데, 여기서 추간판 탈출증이란 척추 뼈 사이의 디스크가 제자리를 벗어나 신경을 눌러 통증을 유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버지 또래에서는 흔한 증상이고, 정도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담당 교수가 수술을 강하게 권유했고, 의사가 권하는 거니 당연히 심각하겠지 싶어 수술을 결정하셨습니다.
- 수술 전: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고, 모임도 많고, 집 안에서 늘 부지런하셨던 분
- 수술 후: 허리 통증이 더 잦아졌고, 외출 횟수가 줄었으며, 참여하던 모임도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고 누워 계시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활동 반경이 좁아짐
허리디스크 보존 치료(운동 치료, 물리치료, 약물 치료 등 수술 없이 증상을 관리하는 방법)로도 충분히 호전될 수 있는 케이스였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 더 억울하고, 드라마 속 "병원도 결국 돈을 버는 곳"이라는 대사가 그냥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의료 실적주의가 환자에게 남기는 것
병원이 수익을 신경 쓰는 건 어느 정도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국내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서 외과적 시술과 수술은 보존 치료보다 수익성이 높은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즉, 의사 개인의 윤리와 별개로 시스템 자체가 수술을 더 많이 권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자료를 보면, 국내 척추 수술 건수는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고령화로 인해 실제 환자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잉 수술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드라마 속 백강혁이 병원 관리자들과 충돌하는 장면의 핵심도 이겁니다. 중증외상 환자는 돈이 안 됩니다. 골든아워(Golden Hour), 즉 중증 외상 환자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최초 1시간을 의미하는 이 시간 안에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처치가 집중됩니다. 반면 수익 회수는 불확실합니다. 그러니 병원 입장에서는 꺼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분노보다 씁쓸함이 더 컸습니다. 아버지를 수술대에 올렸던 의사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습니다. 그 의사도 어쩌면 실적 압박 속에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결정의 결과는 아버지 혼자 오롯이 짊어져야 했습니다. 의사는 퇴근하면 그만인 일이 환자에게는 평생이 됩니다.

환자 중심 의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제가 먼저 한 일은 '세컨드 오피니언'을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이란 같은 증상이나 진단에 대해 다른 의사나 의료기관에 추가 의견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수술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 앞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왠지 '주치의를 불신하는 것 같아서'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솔직히 아버지 수술 전에 이걸 권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의료 소비자로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수술 권유를 받았다면, 먼저 "수술 없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냐"고 직접 물어볼 것
- 같은 진단을 다른 병원에서 한 번 더 확인하는 세컨드 오피니언을 망설이지 말 것
- 수술 전 의무 고지(설명 의무) 내용을 꼼꼼히 읽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반드시 질문할 것
- 한국소비자원 의료분쟁 상담이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문제가 생겼을 때 공식 경로를 이용할 것
백강혁 같은 의사가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입니다. 하지만 그 의사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국내 외상외과 전문의 수는 전국적으로 매우 부족한 상태이며, 열악한 처우와 과중한 업무 강도 탓에 지원자가 적다는 것은 이미 의료계에서도 인정하는 현실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드라마 한 편이 현실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건, 우리가 의료 앞에서 너무 수동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의사가 권하면 무조건 따르던 시대에서, 이제는 환자 스스로가 한 번 더 확인하고 질문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중증외상센터 드라마는 실제 인물 기반인가요?
A. 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실제 외상외과 전문의를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의료 현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의료 현실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특성상 극적 연출이 더해지긴 했지만, 중증외상 시스템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합니다.
Q. 허리디스크 수술, 꼭 해야 하나요?
A. 허리디스크(추간판 탈출증)는 증상의 정도에 따라 치료 방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신경 마비나 대소변 장애처럼 심각한 증상이 없는 경우, 보존 치료(물리치료, 운동 치료, 약물 치료)만으로도 상당수가 호전됩니다. 수술을 권유받았다면 보존 치료의 가능성을 먼저 물어보고, 세컨드 오피니언을 구하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Q. 세컨드 오피니언을 구하면 주치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나요?
A. 세컨드 오피니언은 환자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의사라면 오히려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다른 병원에서 의견을 구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같은 병원 내 다른 과 교수에게 의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후회를 줄이는 길입니다.
Q. 외상외과 전문의가 부족한 이유가 뭔가요?
A. 외상외과는 응급 수술이 많고, 야간·주말 당직이 잦으며, 환자 상태가 불안정해 의료 분쟁 위험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반면 수익성은 낮아 병원 입장에서도 투자를 꺼리는 구조입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전공의 지원이 적고, 전국적으로 전문의 수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론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든 건 드문 일이었습니다. 백강혁이라는 캐릭터가 멋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하는데도 그게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씁쓸했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고치고,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아졌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저에게 의료 앞에서 더 이상 수동적으로 있지 않겠다는 다짐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가족 중 누군가 큰 수술을 권유받는다면, 저는 반드시 세컨드 오피니언을 권할 것입니다. 보존 치료의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고, 설명을 충분히 들은 뒤에 결정을 내리도록 옆에서 챙길 겁니다.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